여주의 개똥쑥 농장에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어요.

요것은 가남에 있는 제 2농장 모습입니다.

20년간 묵혔던 곳입니다.

2011년 가을에 개똥쑥을 심은 곳입니다.

50년만에 찾아온 2월의 한파 속에서도

이렇게 죽지 않고 잘 견디고 있는 개똥쑥입니다.

 

[개똥쑥 씨앗,모종,생초,건초 문의:010-2433-4417]

 

 

 두째 형님입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 보시고 계십니다.

응달쪽은 아직 눈이 녹지 않은채 있어요.

 

 느티나무 낙엽 이불을 덮고 있는 개똥쑥 모습입니다.

 윗 사진의 낙엽을 헤치고 다시 촬영을 했어요.

 요것은 더 가까이서~.

 응달쪽 눈이 얼어서 얼음이 되어 있는 곳의 개똥쑥 모습이랍니다.

 

  낙엽 이불도 못얻어 덮고 이대로 지내온 개동쑥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개똥쑥 모습은 이런 색을 띠고 있습니다.

 

 2011년에 개똥쑥을 심었던 곳입니다.

두재 형님께서 살펴 보시고 계십니다.

사진 앞쪽은 개똥쑥이 키가 크지않고소복하게 수많은 가지만 올라온 것들 이랍니다.

수확을 할 것도 없어 그냥 둔 것입니다.

아래아래 사진은 이것을 가까이서 촬영 했어요.

 2011년 가을에 개똥쑥을 임시로 보관했던 하우스 안쪽 이예요.

그당시 떨어진 씨앗이

비닐하우스 양지쪽에서 거우내 발아가 되어

이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동안 자란 모습입니다.

더이상 크지를 못하고...돌연변이인지

요런 모습들이 대략 20여포기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겉은 죽었는데

속을 떠들어 보니 살아 있네요?

 

 

 

 이곳은 2011년 가을에 어린 모종을 심은 제 1농장입니다.

두째 형님께서 살펴 보시고 계십니다.

이 추운 겨울에도 안죽고 잘 견디고 있습니다.

 사진속 왼쪽에 다른 개똥쑥 보다 좀더 일찍 크던 것입니다.

이 농장에 저런 것이 3~4포기가 됩니다.

저렇게 큰 것을 들여다 보니 얼어서 죽은 것 같습니다.

 

 바로 요 모습입니다.

 

 뿌리 부분쪽은 녹색을 띠고는 있으나

살아남기는 힘들 것 같네요.

이 예로 봐서

가을에 이렇게 크면 월동을 하기가 힘든 것 같군요.........?

아래 사진처럼 키가 안큰것은 모두 괜찮습니다.

 

 손으로 개똥쑥 잎을 떠들어 보며 촬영을 했어요.

이렇게 살아 있답니다.

 

 

 

요것역시 돌연변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원기둥(대공)을 하나만 올리며 마디마다 곁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밑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가 올라옵니다.

이렇게 자라는 것이 일부가 있는데

저도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원인을 찾아야 할 숙제입니다.

이렇게 크는 것은 키도 크지 않고 바닥에서 소복하기만 합니다.

원인을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 주세요.

 

지난 가을에 농장에 심고 남은

개똥쑥 모종이 있던 자리입니다.

영하 17도(체감온도 영하20도 이하)이하로 내려가고

눈이 몇차례 내려 눈속에서 지내며

월동을 하고 있던 개똥쑥 모판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개똥쑥 모종 8판이 오늘 새 주인을 찾아 멀리 시집을 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3판인데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똥쑥 모종을 찾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3월 중순경이나 하순경 부터 

이식을 할 수 있거나 정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키운 모종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개똥쑥 씨앗,모종,생초,건초 문의:010-2433-4417]

 사진 앞에는 얼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가운데와 오른쪽 뒷 부분의 빈자리가

주인을 찾아 떠난 모판들이 있던 곳입니다.

 

      명절이나 되어야 꼬가 옷 입던 시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16일) 1년에 두번의 가족상봉의 기회였으니..



      잡고 밀고 고향으로 가는 설레이는 발걸음도 서로를 도와가며~(1969년 9월24일)

       



      저렇게 해도 누구 하나 욕하는 사람없었던 그시절 이었는데...(1969년 9월24일)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나갔다.(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철도 직원외에도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경찰관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 장면을 방불케했다.

      (1969년 9월24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광주고속버스정류장.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홍제동. (1970년 9월15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잔뜩 찌푸렸던 추석날씨가 오후부터 차차 개이자 고궁에는 알록달록한 명절옷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찼다. (경복궁. 1976년 9월11일)




      한복정장차림으로 추석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째의 일가족. 올해 1백살난 姜敬燮할머니가

      묘에 절을 할때 80세된 며느리 呂判敎할머니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부와 문중일가 20여명이 지켜보고 있다.

      (慶北 金陵군. 1980년 9월24일)

       



      추석 귀성객 (1980년)

       



      추석 귀성객은 돌아오기도 고달프다. 통금이 넘어 14일 새벽 0시20분에 도착한 연무대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객들이 야간통행증을 발급받고 있다. (1981년 9월14일)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1982년 10월3일)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 추석귀성을 위한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행렬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끝이없이 늘어서 있다. (여의도광장. 1983년 9월10일)



      24일 서울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귀성객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1988년 9월24일)

       



      추석 귀성열차표를 사기위해 서울 용산역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 (1989년 8월27일)

       



      저래도 새치기 않고 질서를 지켰었는데. (1989년 9월14일)

       




      텐트와 돗자리까지 동원,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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