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모 언론사 신문에 나온 기사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귀농을 꿈꾸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올려봅니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 백우산(해발 895m)자락. 길 옆 해발 500~600m의 밭에는 고랭지에서 볼 수 있는 감자 등의 농작물 대신 산나물이 경쟁하듯 돋아있다. 곰취다. 떡취와, 눈개승마, 잔대도 있다. 산나물로만 연간 억대의 소득을 올리는 황인삼(63)씨가 가꾼 나물 밭이다.
[눈개승마의 모습]
황씨는 곰취(1만9800㎡), 떡취(1만9800㎡), 곤드레(1만3200㎡), 잔대(9900㎡), 참취(9900㎡), 눈개승마(4950㎡) 등 모두 9만9000㎡의 밭에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이외에도 누리대(누룩취), 삼립국화, 산마늘, 참나물, 미역취, 참두릅, 개두릅, 산삼부추, 모시대, 울릉도미역취 등 이름도 생소한 것을 포함해 20가지가 넘는다.
황씨는 나물로, 묘(苗)로, 씨앗으로 산나물을 판매해 지난해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나물로 2억원, 묘와 씨앗으로 5000만원 등 2억5000만원의 소득을 기대하고 있다. 산나물 재배 20여 년 만에 부농의 꿈을 이룬 것이다.
대구에서 작은 식품가공업을 하던 황씨는 사업 부도로 강원도 산골을 찾았다. 친구의 벌채사업장에서 서기를 봤던 그는 사업장이 문을 닫자 대구로 돌아가는 대신 이곳에 눌러 앉았다. 1978년 광암리로 온 그는 땅을 빌려 고랭지채소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7년 동안 투기성이 강한 고랭지채소 농사로 빚만 졌다.
[울릉도 미역취 모습]
2년간 농사를 접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산나물. 88년부터 백우산은 물론 가마봉 등 인근의 산을 누비며 떡취 등 산나물 씨를 채취했다. 싹을 틔워 옮겨 심는 방법으로 90년부터 본격적으로 산나물을 번식했다. 씨를 채취하러 깊은 산에 갔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리는 등 죽을 고비도 넘겼다. 동네 주민도 황씨의 산나물 재배를 비난했다. 산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나물인데 돈 들여 재배한다며 그를 “미쳤다”고 했단다.
산나물에 대한 열정과 정성, 부지런 함 등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재배 면적을 늘렸지만 다른 고민이 생겼다. 출하시기가 됐지만 수요가 없었다. 92년 1만3200㎡ 밭에 품질 좋은 떡취를 길렀지만 팔 곳이 없었다. 부인 사공금자(61)씨와 함께 트럭에 떡취를 싣고 강원도 곳곳의 떡방앗간을 누비며 팔러 다녔지만 소득은 신통치 않았다.
[산마늘 모습]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왔다. 백우산에 등산을 왔던 이모(여·서울)씨가 황씨의 집에서 산채로 점심을 먹은 후 다른 사람을 데리고 또 찾아왔다. 2000년 무렵이었다. 이후 이들은 해마다 1~2번씩 광암리를 찾은 것은 물론 입소문을 내 고객이 급격하게 늘었다. 농약을 치지 않아 안심할 수 있는데다 거의 모든 산나물을 노지에 재배, 비닐하우스 것보다 맛과 향이 뛰어난 것이 비결이었다.
5년 전부터는 웰빙 바람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황씨로부터 연간 1000만원 정도의 산나물을 가져가는 전문식당이 생겼다. 고성군은 올해 500㎏의 떡취를 미리 주문했다. 홍천과 태백에서 4만5000주의 눈개승마 묘를 주문했다.
“먹고 사는 데는 천평(3300㎡)의 밭이면 족하다”는 황씨는 산나물로 함께 잘 사는 농촌을 구상하고 있다. 그를 비난했던 이웃 몇 가구는 5년 전부터 산나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강원대 산채특화작목 산학연협력단으로부터 우수농가로 지정되는 등 지원을 받은 황씨는 홍천군 산채연구모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