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농법의 작부 방식은 단작(單作)과 연작(連作)이 특징이다. 단작은 단일 작물을 대단위로 재배하는 것을 말하고 연작은 같은 작물을 계속 같은 땅에다 심어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가장 최악의 농사 방법이다. 단작과 연작은 병해충을 부르고 땅을 망가뜨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병해충에 강한 작물이라 하더라도 단작을 하게 되면 바로 병해충에 약해진다. 가령 상추나 대파 같은 작물은 특유의 쓴맛과 향이 있어 병해충에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런 작물을 대단위로 심으면 병해충들이 신나라 한다. 자기 세상을 만난 것이다. 가령 아무리 힘 좋은 변강쇠 같은 사람이라 해도 그런 사람들 100명을 한 방에 죄다 생활하게 하면 더 이상 변강쇠이기 힘들다. 요즘 아이들이 유치원, 학교 갔다 오면 병에 전염되어 오는 것도 바로 단작 생활방식에서 오는 취약점이다. 뭐든지 생명이라는 존재는 다양한 종들이 다양한 방식대로 살아야 건강하다. 다양한 생명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염병 차단막이 되어 준다. 사람도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어울려 살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의 전염병을 막아주는 차단막 역할을 하고 아이들은 노인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노인네도 홀로 살면 꿉꿉한 노인네 냄새가 나지만 부부가 함께 살면 중화되어 냄새가 별로 없다.

작물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작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서로가 서로에게 병해충 차단막 역할을 해준다. 예컨대 배추 옆에다 대파를 심으면 배추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대파 향을 싫어하기 때문에 한 번에 확 번지지 않는다. 고추 열매를 뚫고 들어가 기생하는 담배나방이 애벌레도 들깨향을 싫어하기 때문에 고추 밭 가운데 드문드문 들깨를 심으면 효과가 있다. 그러나 굳이 특정 병해충을 싫어하는 특정 작물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다른 것들을 조합해 같이 심으면 대개 효과가 있다. 작물이 다르기만 하면 다른 것만으로도 차단막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정 병해충이 특정 작물을 좋아한다면 다른 작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차단막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되도록 성격이 다른 것들을 함께 심어야 효과도 좋고 일하기도 좋으며 땅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연작은 단작 못지않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재배방식이다. 연작이라 함은 같은 작물을 계속 같은 장소에다 심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식은 땅을 망가뜨리고 결국 작물도 건강을 잃는다. 연작으로 인한 피해는 여러 가지다. 우선 땅 속의 영양과 생태가 한 작물에 의해 편중된다. 또한 그 작물만을 공격하는 병해충이 증식한다. 결국 한 작물만을 계속 연작한다면 그 작물을 좋아하는 병해충을 양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작으로 인한 근본적인 피해는 염류축적과 그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이다. 작물도 다 같은 생명인지라 똥을 눈다. 작물의 똥은 말하자면 염류라 할 수 있다. 염류가 축적되면 토양이 산성화되고 결국엔 작물도 살지 못하는 오염된 땅이 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막이 되고 만다. 옛날엔 사막이 아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사막이 된 지역은 대개 한 작물을 연작하여 생긴 피해인 경우가 많다. 물론 연작의 문제만이 아니라 과도한 목축과 과도한 물의 낭비로 인한 경우도 많다.

연작 피해가 없는 작물은 매우 드문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물이 바로 벼다. 벼가 연작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논의 물 때문이다. 물이 토양의 산성화나 염류 축적을 정화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벼가 늘 같은 논에서 변함없이 심어지고 재배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신기한 현상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처럼 벼가 늘 같은 논에서 살고 있기에 잘 모르는 것이다.

연작 피해에 매우 약한 작물을 들라면 단연 고추가 제일이다. 고추에게 제일 무서운 병은 탄저병인데 이 병은 연작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다. 연작하지 않고 윤작한다 해도 탄저병을 완전히 물리칠 수는 없다. 이 병을 옮기는 탄저균은 곰팡이 종류인데 흙에서 산다. 그래서 고추를 같은 흙에서 연작하면 흙에는 탄저균이 계속 증식한다. 탄저균을 증식하는 연작을 하면서 고추는 절대 농약 치지 않고는 안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고추를 연작하면 사실 탄저균을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통 방식의 윤작법을 알아보자. 정확히 말하면 돌려짓는 윤작만이 아니라 섞어짓는 혼작(混作), 사이짓는 간작(間作)이 있다. 이를 통틀어 윤작(輪作)이라 표현하자.

원래 윤작은 땅의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나온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땅에서 몇가지 작물을 이모작, 또는 삼모작 한다든가, 아니면 수확하고 심는 시기가 맞지 않아 수확하기 전에 수확할 작물 사이에 심는다든가, 아니면 주 작물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서 자투리 공간이나 여유 공간을 활용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윤작은 지금에 와서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일 큰 의미를 들라면 병해충에 대한 방어 기능이 높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단작을 하게 되면 아무리 강한 작물이라 해도 병해충의 공격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떤 것들을 윤작해야 병해충에 좋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대체로 같은 작물만 아니라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연결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작물의 성격을 잘 파악해 다른 성격의 작물들로 조합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과(科)가 다른 것끼리 조합하는 게 좋다. 가령 고추 감자 토마토 가지는 같은 가지 과이기 때문에 윤작의 조합에서 서로 피하는 게 좋다. 과도 과지만 성격이 다른 것끼리의 조합이 좋다. 가령 위로 크는 수수나 옥수수 밭에는 아래로 기는 조선 오이나 호박이 좋다. 고구마 같이 땅속 뿌리로 열매를 맺는 작물과 어울리는 것은 위로 열매를 맺는 수수나 조 같은 곡식이 좋다.

다음으로는 질소질 거름을 많이 먹는 다비성(多肥性) 작물도 서로 피하는 게 좋다. 다비성 작물들은 대체로 병해충에 약하다. 병해충도 질소질을 좋아한다. 질소질 거름을 많이 먹은 작물은 소위 비만에 걸리기 쉽고 수분을 과잉 함유하여 병해충을 불러들인다. 과가 다르다 해서 다비성 작물을 함께 심거나 그루작으로 심으면 병해충에 약해진다. 예를 들어 다비성인 고추 밭 옆에 또한 다비성인 배추를 심는다든가, 다비성인 옥수수 그루작으로 다비성인 마늘을 심는다는 것은 그리 좋은 윤작이 아니다. 거름이 풍부하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병해충에 대한 좋은 대책은 아니다. 다비성 작물 옆에는 되도록 거름을 적게 먹는 작물을 심든가, 아니면 콩과처럼 거름을 스스로 만드는 작물을 심는 것이 좋다. 가령 고추 밭 옆이나 사이사이에 수수나 들깨를 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배추 밭 옆이나 사이에는 파 종류를 심는 것도 좋다. 콩과 식물은 땅을 비옥하게 해주기 때문에 어떤 작물과도 어울릴 수 있는 곡식이다.

세 번째는 땅심을 많이 빼먹는 작물들은 피한다. 다비성 작물들이 대표적인데, 다비성이면서도 다시 땅으로 돌아갈 게 별로 없는 작물들도 조합에서 피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채소들은 대개 다비성이면서도 거름이 되어 땅으로 돌아갈 부산물이 별로 나오질 않는다. 특히 잎채소들이 그렇다. 배추를 비롯해 서양 쌈채소들이다. 곡식처럼 알곡만 먹고 나머지 줄기나 짚들은 다시 거름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땅을 심하게 수탈하지 않는다. 예컨대 가을에 배추를 심었다면 그루작으로 마늘보다는 보리나 밀이 좋다. 아니면 겨울엔 쉬게 했다가 봄에 곡식 종류를 심는 것도 좋다.

네 번째는 성격이 다른 것들을 윤작하여 흙을 황폐화하지 않고 개량해주는 것들로 조합하면 좋다. 앞에서 연작의 폐해를 얘기할 때 염류축적과 토양의 산성화를 지적했다. 보통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쟁기질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면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토양의 통기성(通氣性)을 좋게 해주고 산성 토양에도 강한 곡식을 재배하면 무경운 농사도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게 바로 밀이다. 밀은 뿌리를 깊이 내려 양분과 수분 흡수력이 높아 거름도 적게 든다. 뿌리를 깊게 내리기 때문에 땅 속의 통기성을 높여준다. 비교적 산성토양에서도 내성이 강한 편이다. 더불어 밀은 보리와 함께 잡초에 대한 내성도 강하기 때문에 겨울에 땅을 놀리지 않고 이런 곡식을 심으면 땅을 좋게 해주는 의미가 있다.

밀은 보리보다 수확이 늦기 때문에 그루작으로는 콩이 제일 좋다. 사이짓기로 볍씨를 직파하는 것도 가능하다. 콩을 수확한 다음에는 마늘을 그루작으로 재배해도 좋다.

요즘은 호밀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땅을 개량해주는 효과가 커서 호밀 재배가 늘고 있다. 보통은 수확하기 전 적당히 크면 갈아엎어버린다. 갈아엎지 않고 그냥 베어 쓰러뜨려 놔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본다.

밀과 보리는 농사도 쉬울 뿐만 아니라 놀고 있는 겨울 땅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식량 자급율을 높이는 데 일조할 곡식이다. 그러나 밀과 보리는 수확기가 늦어 벼와 이모작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재배가 감소해 왔다. 게다가 요즘은 벼 모내기가 빨라졌기 때문에 밀, 보리 수확 후 모내기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밀, 보리와 벼를 이모작 하려면 토종 벼를 살려야 한다. 토종 벼는 대체로 하지 무렵에 모내기하기 때문에 충분히 밀,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하다. 그게 아니면 밀, 보리 수확하기 전 사이짓기로 그 사이에 직접 씨를 파종해도 된다. 이렇게 해서 논을 밀, 보리와 벼 이모작을 하게 되면 논 토양의 개량 효과가 커져서 좋다. 토종 벼를 다시 살려야 하는 이유인데, 반면 토종 벼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밥맛이 떨어져 그걸 어떻게 재배하느냐 의문을 던진다. 벼 자체로만 보면 분명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논의 입장에서 보면 밀, 보리와 이모작을 하기 때문에 결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만 없다. 다만 밀, 보리를 잘 먹지 않으려 하는 게 문제다. 밀, 보리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곡식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토종 벼가 맛이 떨어진다는 것도 재고해봐야 할 문제다. 토종 벼가 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백미일 경우라야 맞다. 토종 벼는 대체로 현미로 먹어야 제맛이 산다. 먹기에 거칠지는 몰라도 그 맛과 향이 살아있다. 그걸 백미로 깎으면 그냥 탄수화물 덩어리에 불과하다. 백미가 맛있는 것은 일본식 쌀들이다. 이른바 아끼바레류다. 그런데 사실 쌀의 영양은 속껍질(쌀겨)에 많다. 그 영양을 다 깎아 백미로만 먹으면 이게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현미로 밥을 먹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재고 해봐야 한다. 쌀겨로 벗겨 버리는 양이 무시 못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미로 먹으면서 밀, 보리와 함께 재배한다면 결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번째로는 작물의 약성(藥性)을 잘 파악해 그것을 이용해 조합을 꾸미는 방법이다. 들깨를 고추 밭 사이사이에 심으면 들깨 향이 고추 열매를 공격하는 담배나방애벌레를 막아준다. 또한 들깨 심었던 자리에 마늘을 심으면 들깨 향이 마늘에 좋게 작용한다. 고추 심었던 자리에 마늘을 심으면 마늘향이 고추밭에 서식하는 병균들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좋은 것은 파 종류다. 파나 부추를 주 작물에 간작이나 혼작으로 심으면 여러 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 대체로 모든 채소에 효과가 있다. 토마토, 오이, 호박, 수박, 배추, 딸기, 시금치 등이다. 그 외 갓도 특유의 향 때문에 토마토에 좋다고 하며 마늘도 특유의 향 때문에 사과 나무 주변에 심으면 사과나무 껍질을 파고드는 벌레들 예방에 좋다고 한다. 파와 부추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재배하기도 하지만 간작, 혼작 작물로 하여 목적하는 주 작물의 해충 예방용 목적으로 심으면 좋다.

마지막으로는 이른바 타감작용(Allelopathy, 알레로파시)을 이용한 윤작이다. 식물들은 끊임없이 화학물질을 내뿜어 다른 식물을 공격하거나 다른 식물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한다. 다른 식물에 좋은 작용을 하는 물질을 내뿜기도 하지만 대체로 주 목적은 방어와 공격에 있는데 특정 식물에게는 그게 좋은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그 식물과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공격이나 방어로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 타감작용의 이용으로 제일 주목 받는 것은 잡초 억제이다. 말하자면 잡초에 대한 저항물질을 많이 내뿜는 작물을 이용해 제초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맥류인 밀과 호밀 또는 보리가 있으며 메밀도 효과가 있고 자운영도 좋다. 자운영은 녹비작물로도 효과가 있다. 요즘은 수단그라스나 헤어리베치라는 외래 작물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런 작물을 앞 작물로 재배하고 나면 풀이 훨씬 덜하다.

낙엽을 깔면 제초 효과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낙엽에서 타감물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단풍잎, 갈잎, 은행나무잎, 솔잎이 있다. 이런 잎들을 작물 사이에 깔아두면 제초 효과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병해충 방제효과도 얻을 수 있다.

 

출처 : 모심과 살림
글쓴이 : 흰그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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